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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명환 ♡ 선아의 결혼 이야기

by 찬혁 아빠 2005. 3. 24.


첫 만남 - 수동교회 고등부 (1985. 1. 첫주~ )

 선아와 명환이가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명환이가 수동교회에 처음 등록하던 날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수동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던 선아와 달리, 명환이는 고 1 때 잠실로 이사오면서 수동교회에 처음 나오게 됐지요. 선아는 그 때 고등부 예배 반주를 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장래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교회에서 같은 반 친구로 1년을 지냈답니다. 선아는 수줍음이 많고 명환이도 '못말리는 쑥맥'이어서 서로 호감은 가졌지만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지냈어요. 오죽하면 수동교회 고등부 시절 명환이의 별명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습니다. 예배와 공과공부 시간만 마치면 친구들과 얘기 나눌 틈도 없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죠.


청년회 시절 (1988 ~ )

 두 사람은 함께 주일학교 교사, 청년회 임원 등으로 봉사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고, '주바라기'라는 동기 Q.T. 모임을 통해 기도제목들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 당시 선아는 명환이가 그저 공부만 하는 '샌님'인줄 알았는데 신앙도 깊고 너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고 점점 좋아하게 됐고, 명환이도 고등학교 때는 선아가 자기만큼 키도 크고 넘볼 수 없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대학생이 되어 가까이에서 보니 키도 적당하고(^^) 신실하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정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됐죠. 무엇보다 명환이는 선아의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선아가 교회에서 먼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부터는 청년회를 마치고 잠실에서 양재동까지 전철을 타고 함께 걸어 집까지 바래다 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비슷한 시기에 각자 서로의 이름을 두고 배우자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만남, 긴 이별(?) (1994. 1 ~ )

 

한번도 객지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아들이 혼자 대전에서 생활을 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시던 부모님은마침 회사에서 새로 지은 사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겨 서둘러 두 사람의 결혼 날짜(1994.11.12)를 잡아 주셨고, 사택 신청을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명환이는 이때부터 선아에게 '여보, 당신'과 존대말 사용을 강요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닭살이 돋더니 지금은 너무 자연스런 '여보'와 '당신'이 되었답니다.)

 명환이가 첫 직장으로 대전에서 일하게 되고 처음 몇 개월간은 창원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날 수밖에 없는 주말연인(?)이 되었죠.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고속버스에 올라 잠들었다가 뒷머리가 납작하게 눌린 채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항상 선아가 반갑게 마중나와 있었고, 금새 주일 오후가 되면 두 사람은 다시 터미널에서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아쉬워 하면서 함께 살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결혼식 (1994. 11. 12 )

드디어 결혼식 전날, 막상 닥치고 보니 너무나 낯설고 이상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할 때는 분주하고 경황이 없어 나중 일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막상 결혼 전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일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이제 이 집을 떠나 둘만의 신혼집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생각, 앞으로 선아와 둘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갈 생각 등이 겹치면서 물끄러미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명환이 얘기)

수동교회에서 정완모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는데 지금껏 그렇게 많은 축하객들이 들어선 결혼식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배당 2층까지 들어선 많은 분들의 축복의 박수를 받으며 둘이 함께 걷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축가를 불러준 후배들도 평소보다 더 많은 준비와 연습을 했는지 악보도 없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성가를 불러주었고,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예정에 없던 '축복송'까지 불러주어 선아를 눈물짓게 만들었답니다.

 


신혼 생활 (1994. 11. 12 ~ )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며칠간은 너무도 낯선 곳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아는 대전에 내려와 한동안 주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집에만 있으려니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했죠. 하지만, 대전제일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부터는 주위에 많은 좋은 분들을 알게 되어 금새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전제일교회에 등록한 다음 주부터 둘이 함께 대예배 성가대에 Alto와 Bass 파트에서 찬양으로 봉사했고, 창원으로 내려오기 전 얼마동안은 저녁예배 성가대에서도 반주자와 Bass 파트 대원으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대청댐에 놀러가 사진을 남긴게 가장 큰 수확일 정도로 둘 다 잘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성격이어서 주로 집에서 얘기를 하곤 했지요. 점차 서로의 성격과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던 면들을 알게 되면서 가끔씩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찬혁이 탄생, 그리고... (1996. 10. 12 ~ )

찬혁이는 결혼한지 2 년 정도 지나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 10월 12일, 토요일, 오늘 오후에는 출산할 것 같다는 연락을 아침에 받고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찍(오전 10시 조금 전) 회사를 나서 서울로 차를 몰았는데, 찬혁이가 그 새를 못참고 10시 21분에 나와 버렸죠. 명환이는 선아가 출산의 고통 중에 있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걸 두고두고 미안해 하고 있지만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여보, 둘째 낳을 때는 꼭 있어줄께~?)

 

찬혁이의 탄생은 우리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찬혁이가 옹알이를 하고, 걷기 시작하고, 새로운 단어를 말하는 것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예쁘기만 했죠. 반면에 찬혁이가 클수록 엄마, 아빠로서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느끼게 되고, 부모님께서 우리 두 사람을 키우실 때의 심정과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날마다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그리 길지 않은 추억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오늘 이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축복이 너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고 감사가 넘치도록 여러분도 기도해 주세요...